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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과정에 대한 폴 매카트니 인용

“The Craft and Business of Songwriting” 이란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여기저기 펼쳐서 읽고 있는데 인상깊은 부분들은 종종 메모해두려고 함. 깔끔한 번역문으로 올려두고 싶은 욕심은 여러 사정상 접어야 할 것 같고(가장 큰 문제는 영어 실력과 국어 실력이죠). 1장에 인용되어 있는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요약해보자면 :

종이에 뭐라고 적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올때 난 머릿속으로 ‘뭐가 됐든 그냥 써! 종이에 옮겨!’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퀸시 존스와 함께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는데, 그가 20년 전에 자신의 인생을 바꾼 어떤 책에서 읽기를, 창의적인 행위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그냥 하는 것,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뇌가 버텨내질 못하고 시간도 많이 소모된다. 이 단어가 옳은가 저 단어가 옳은가 L.A. 타임즈의 평론가들이 내가 이 단어를 쓰면 좋아할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보면 벌써 삼십분이 지나가 있게 마련이다.

원문 -

In an interview by Theresa Ann Nixon, Paul McCartney discussed a prose piece he’d been working on: “So when my hand didn’t know what to put on the paper, my head just said to my hand, 'Write! Put it down. It doesn’t matter what you say, just put it down. Even if it’s all mistakes. Just put it down.’ I got this method of just forcing my hand to write, no matter what it was. And later I talked with Quincy Jones about this when we were doing "The Girl Is Mine” with Michael Jackson. He said he had gotten this book twenty years ago that had changed his life, where the fellow explained that there were two aspect to a creative act. One was just to create it, just do it. The other was judicial, checking everything. He said the biggest mistake everyone makes is to try to to the two at once. And suddenly ding! that’s what my problem is. In all those years with essays in school, you know, I was trying to get that wonderful opening…. When you try to do everything at once, there’s just no time. Your brain can’t cope. You’ll kill all your enthusiasm and creative spirit by checking your spelling and going to see, 'Is this the right word, is it clever enough? Will the L.A.Times critic like it if I say hobgoblin? Yes, there is a better word. Or shall I just say, demon? No. Hobgoblin. No, demon.’ And you’ve just spent half a bloody hour.“

LACMA의 스탠리 큐브릭 전시회

- 엄청나게 꼼꼼하고 성실한 거장의 작업, 준비작업, 커뮤니케이션 등을 성실하고 방대하게 전시하고 있는데, 다 돌아보는데 총 6시간 정도가 걸림. 영상, 텍스트들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컨텐츠도 많았고. LACMA에서 내년 6월까지 전시를 한다던데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번 더 들러보고 싶음. 

- 스탠리 큐브릭은 열여섯살 때, 루즈벨트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 옆에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신문판매원의 사진을 Look 라는 잡지에 팔면서 그 잡지의 최연소 사진기자가 되었다고 함. Look 에서 몇년동안 일하면서 찍은 수백장의 사진들 중에 상당수를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사진의 비범함에 열폭. Look 라는 잡지는 아마도 요즘 미국에서 뭐가 핫한가를 다루는 일종의 풍물 잡지였던 모양으로 요즘 사람들이 뭘 입고 사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사는지, 권투선수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는지, 미국 방방곡곡을 찍은 젊은 큐브릭의 재치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아마 그게 큐브릭에게 평생의 자산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 Look 에서 일하는 동안 MoMA 등의 영화상영회에 다니곤 했던 (영화를 보러다녔다는 건지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는건지 확실치 않음) 큐브릭은 권투선수의 하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영상에 입문, 사진기자 일을 그만두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더 찍어서 팔고, 그 후 아버지와 형한테 돈을 빌려서 첫번째 영화를 찍게 됨. 나중에 영화에도 권투선수가 또 한 번 등장하는 걸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 무엇에 매료되어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전시에서 봤던 큐브릭 영화의 장면들에는 격투를 할 때의 움직임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고, ‘전쟁'과 '군인'을 다룬 영화들을 유독 많이 찍기도 했음.

- 또 '롤리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욕망과 에로스를 철학적인 맥락으로 다루지만 묘사는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것, 또 감각적인 묘사의 완성도를 위해서 얼마나 끝없는 노력을 했는지 사전 작업 중에 다양한 포즈와 각도로 수많은 여배우 사진을 찍어둔 것에서 볼 수 있었음.

- 엄청난 완벽주의자라 나폴레옹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에 대한 수백권의 책과 만장이 넘는 그림을 모으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나폴레옹의 행적을 연도별, 날짜별, 시간별로 카드에 정리해서 서랍장에 넣어두었을 정도. 그 프로젝트는 흥행에 대한 우려로 결국 엎어졌다고 하는데 만약 만들어졌다면 어떤 영화일까 아직도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있다고 함.

- 만만치 않게 많은 준비를 했지만 끝내 엎어진 것 중에 하나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The Aryan Papers’ 라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영화를 위해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과 모아둔 자료들, 여배우의 모든 동작을 찍은 사진들, 그리고 그 여배우를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인상깊었음.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매일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결국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지만 결국 엎어졌을 때 얼마나 허탈하고 슬펐는지를 여배우의 목소리로 듣고 있자니 나한테도 막 그 허탈함이 전달되어 옴.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먼저 개봉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 영화를 접고 나서 큐브릭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였다고. 

- 큐브릭은 A.I.라는 영화에 대한 방대한 사전작업을 해놓고 감독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맡길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큐브릭은 사망했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스필버그가 제작과 감독을 모두 맡아서 스필버그 스타일로 만들어졌다고. A.I.의 제작을 위해서 크리스 베이커라는 컨셉트 아티스트가 그린 수많은 (최소 수백장에서 수천장은 될 듯) 그림들은 그 자체의 완성도 때문에 전시에서 본 것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였음.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최소 수백장의 컨셉아트들이 그려졌는데 '영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예술팀이 그린 그림들을 슬라이드 형식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영화를 위해서 큐브릭은 과학적인 타당성을 따져서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을 디자인하고 과학자들보다 더 지독하게 여러 회사에 기술을 의뢰했다고 함. 의상을 위해서는 보그지에 디자인을 의뢰하고. 촬영보다는 수백명이 매달린 사전작업과 특수효과에 시간이 더 걸렸던 영화.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쓰인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배리 린든'에 쓰인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등 그의 영화를 생각나게 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될 정도로 클래식 음악들을 인상깊게 사용했고, 그 음악들이 전시회장에 반복해서 울려퍼지는 게 약간은 기괴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음악 사용을 분석한 영상도 재밌게 봤음. 주로 인간사의 부질없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왈츠를 ('아이즈 와이드 셧'의 쇼스타코비치 등), 대서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행진곡을,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용했다고 함. 민요나 오리지널 음악 등 다양한 음악으로 완성도 있는 사운드트랙을 만들곤 했던 듯. 

- 사진기자 출신답게 카메라와 렌즈를 사모으는 보기드문 영화감독이었다고 하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렌즈를 고르고 카메라 회사에 똑같은 렌즈를 여러개 가져오게 해서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랐고 렌즈 청소도 절대 전문가 이외의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았다고 함. '배리 린든'을 찍을 때는 그 시기의 유화같은 분위기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실외에서는 자연광, 실내에서는 촛불만으로 영상을 찍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위해서 칼 자이스가 나사를 위해 만들었던 렌즈를 구해다 사용했다고 함.

-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신경써야할 게 많은지를 생각하면서 종종 공포에 질릴 때가 있는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엄청나게 많은 분야를 꼼꼼하게 신경써야 되고 감독들은 그걸 실제로 해낸다는 것, 그리고 큐브릭과 같은 사람들은 그 모든 분야를 완벽하게 해낸다는 걸 당연한거지만 다시 생각해보게 됨.

- 평생 걸작을 만들어낸 존경받는 거장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음. 원작이 된 책을 구해서 어떤 장면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책에 직접 메모해 둔 것들, 여러 번 고쳐쓴 시나리오와 그 위에 수정되어있는 대사들, 의견들, 또 관련된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서한들. 이를테면 '스파르타쿠스'를 찍을 때 주연이자 제작자인 커크 더글라스와 주고받은 서신들, '롤리타'의 주연이었던 수 라이온이 결혼 후 남편과 찍은 사진을 동봉해 근황을 전한 편지, '롤리타’ 개봉을 앞두고 기독교계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말아달라며 보낸 두 통의 편지와 '걱정할만한 그런 내용은 없다. 영화를 보고 판단해달라'며 보낸 큐브릭의 답장, 영화가 전세계에서 개봉될 때 어느 나라에서는 어떤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걸 감독에게 알리는 편지들 등. 가장 재밌었던 건, '샤이닝'의 포스터 작업을 하던 소울 바스가 다섯장의 포스터 시안을 보내며 자기 작업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시안 다섯장 모두 위에다가 쿨하게 마음에 안드는 이유를 적은 큐브릭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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